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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뜻밖의 만남.
수요일 오후.
2시반에 수업이 끝나 4시 특강까지 뭘 할까 고민하다 공학관 독서실에서 잠깐 휴식을 취한다.
그리고 세 시반 경, 특강 시작 30분전에 특강장소인 JJ아트홀로 이동한다.

공학관 -> 자유관 -> *진리관 -> 예술관(JJ아트홀)

이동중에 진리관(인문대)건물 앞에서 나는 멈춰섰다.
내 눈을 비비고 볼을 꼬집어야 했다.

진중권!

TV라는 가상속이 아닌 눈앞에 펼쳐진 현실 앞에 그가 있다.
진중권 선생이 원형 탁자에 앉아 뭔가를 읽고 계셨다. 아마도 강의 요약이겠지.

주변엔 나와 선생말고 아무도 없었다.
떨렸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어차피 주변에 사람도 많이 없으니 '쪽팔릴소냐!'라는 심정으로 인사를 했다.

: (말을 더듬으며)ㅇ..안.안녕하세요...진중권 선생님이시죠?
진선생: (휴대전화를 만지작 거리며) 네^^
: (놀란듯이) 악! 지금 안그래도 특강 가는길인데 여기서 뵈니 영광입니다.
진선생: (겸연쩍은 미소로) ^^
: (마치 소녀시대 태연을 본 마냥 포스에 눌려 할 말을 잃은 것처럼 선체로) 그럼...이따뵙겠습니다.

선생은 그닥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닌듯 했다. 그래서 나도 조금 뻘줌 했다. '그냥 갈껄 그랬나...'
인터넷이나 TV를 통해 본 그의 모습이 나란 사람에게는 다르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말 잘하는 사람인데 역시 그건 무대에 섰을때 나오는 힘이겠지? 나 혼자서 딱히 거기서 5분동안 이야기 할 것도 아니었고 말이야.'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서운했다랄까.
그래도 그냥 지나쳤을 나보다 선생에게 얼굴이라도 보며 인사를 했다는데 만족하고 특강 장소에 도달했다.

1. 현실과 가상의 중간

리모델링된 JJ


JJ아트홀에 도착했다. 아직은 이십여분이 남아서 그런지 자리가 많이 비어있다.
나는 강당 중앙에서도 중앙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맨 앞은 '뭐랄까, 너무 현실적이니깐 현실과 가상(맨 뒤)의 중간'에 앉았다.
특강 시작전에 화장실이나 갈 생각으로 나오다가 인문대 영미문화에 다니는 후배한녀석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형! 인문대 학생 아닌데 이거 왜 들어요?"
"인문대생은 아니지만, 대학생이니깐 듣지 임마 ㅋㅋㅋㅋ"

화장실(현실)에서 나와 친구와 전화통화(가상)를 나눈다.
친구에게 진중권 만난 이야기를 했더니 사진이랑 사인은 받았냐고 묻는다.

아차.

그래서 인문대앞에서 만난 사진이 없다. 뭐 '인증샷'이니 뭐니 하며 처음부터 사진만 올릴려고 생각했다면 찍었겠지만 나는 순수하게 선생에게 인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친 것이다.

자리로 돌아왔다. 내 옆에는 여학생 한명과 연세 지긋하신 교수님 한분이 자리 잡으신다.
특강시작 네시 오분 경과. 사회자가 올라와 마이크를 잡고 말씀 하신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특강 전주대 인문주간 3번째 특강시간입니다. 오늘 나오실 분은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분이고 아마 한 번 꼭 만나뵙고 싶은 분이 아닐까 싶네요, 진중권 교수입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진중권입니다."

2.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다.
이 특강을 듣기전 나름대로 인터넷을 통해 "진중권"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해봤다.
진중권 선생의 전공분야인 "미학" 그리고 저서들을 통해 이 사람에 대해서 미리 알아봐야 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중권 하면 역시 '진보논객'이라는 단어가 수식어로 빠지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왜 또 욕을 듣는 사람인지도 수 많은 댓글을 통해 확인했다. 심형래 감독의 D-War에 대한 논란도 정말 큰 파장을 불러온 일이었는데, 난 그당시 선생에 대해서 하나도 알지 못했다. 선생의 블로그도 구경을 하면서 비행에 관심이 있다는 것도 미리 알고 있게 되었다.

특강은 인문학에 관한 이야기 한것이었으므로 이분의'정치색깔'은 이야기 하지 않겠다.
다만 특강 중간중간에 유머러스한 현실 풍자는 선생을 아는 사람이라면 다들 잘 알거라 생각된다.


선생은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2가지 요인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시장의 위협"이고, 다른 하나는 "매체의 변화"랬다.

2000년 초반즈음에 우리나라에는 인문학의 위기가 닥쳤다고 한다.
이는 더 이상 대학이 철학이나 과학과 같은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보다 실용적인 학문을 중점적인 역량으로 가르는 곳이 되어버렷기 때문이다. 일례로 옛날에 공대는 대학(university)이 아니었다. 기술만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대학(college)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대학에서 공과대학이 자리 잡았을 정도로, 과거 문리중심의 대학의 형태가 약해졌다고 한다. 따라서 인문학 시장이 위협되었다고 한다.

쉽게 말해보자면,
지금 대학생들은 취업률이 낮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어떤대학생이냐의 차이이다.
공대와 같은 실용주의 학문에서는 일자리가 남아 돈다. 기업이나 공대교수들은 입을 모와 이야기한다. 일자리 많다고.
근데 인문대는 다르다. 인문을 공부했지만 취업을 할때는 고민을 해야한다. 인문대생이 기술직으로 취직하는 경우는 드무니까. 그래서 많은 인문대생들은 수천명의 일이라는 경쟁률을 만들어 버리면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거다.
과거 진리를 추구하던 학문들이 21세기에 들어서는 밥벌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아니 대학생들은 적어도 그렇게 잘못 믿고 있는 거지. 왜냐하면 인문학을 공부 했다고 해서 굶어 죽었다는 사람은 듣질 못했으니깐.

다소 선생의 말을 나의 생각과 더불어 해석 하긴 했지만 인문학의 근본적인 위기는 대학생들에게 있다.
아니면 제7차교육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거지.

두번째 인문학의 위기 요소는 매체의 변화라고 했다.
이는 말 그대로 과거의 텍스트 중심의 정보전달에서 이미지를 통한 정보 전달 방식으로 바뀐 패러다임을 말한다.
한마디로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소크라테스, 마르크스를 읽던 진중권 선생 시대와 오로지 취업을 하기위해 인터넷이나 뒤지는 우리가 다르다는 것.
인문학은 사람에 대해서 공부 하는 학문이다. 사람들이 몇 천년 동안 살아오면서 연구 한것들은 이미지와 텍스트로 보존되어 왔는데 이미지 보다는 사람들을 텍스트를 더 신뢰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대학생들이 전공도서와 영어문제집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의 책을 얼마나 읽을까. 그것도 대학 4년이라는 시간동안 말이다. 거기서 인문학의 위기는 가중된다.

3. "프로그래밍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특강이 끝나며 진선생은 말했다. 가까운 미래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프로그래밍 '당하는' 사람과 프로그래밍을 '하는' 사람.

프로그래밍이라고해서 컴퓨터 프로그래밍만을 연상하고 '나 컴퓨터 못하는데?'라고 바보는 없을 것이다.
프로그래밍이란 단어는 디자인(design, 설계)와 같은 의미로 생각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며 내 인생을 설계해 나가는 사람일까
아니면 내가 아닌 타인의 생각과 결정에 의해 만들어진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일까.

모든 대학생들에게 대학이라는 곳이 '프로그래밍', '디자인'을 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99.
진중권 선생의 저서 2개를 인터넷 주문했다.
특강전에 도착하면 들고가서 사인이라도 받으려 했는데...
책도 늦게 왔을뿐더러 특강이 끝나자 엄청 많은 학생들이 몰려가 사인을 받는 바람에 난 그냥 그 모습만 보고 만족했다.

진중권의 사인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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