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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communism)

22세기 2010. 7. 28. 17:34



출처 - 다음 백과사전




공산주의

사유재산제(私有財産制) 대신에 재산의 공유를 실현시킴으로써 계급없는 평등사회를 이룩하려는 사상 및 운동.
개요
어원인 '콤무네'(commune)는 다른 사람과의 나눔, 사귐을 뜻하는 라틴어로서 공동체의 재산이 구성원들 모두에게 속하는 사회제도를 일컬었다. 재산의 사유가 빚어내는 도덕성의 흠결(欠缺)을 간파하고 공유재산제를 바탕으로 보다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사회공동체를 일구려는 소박한 공산주의의 이상은 인간이 정치적·사회적 사색을 시작한 때부터 싹튼 것으로 볼 수 있다. 공산주의 사상의 기원은 플라톤의 〈국가 The Republic〉, 고대 유대인들의 에세네파(派), 초대교회의 교리, 근대 초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Utopia〉, 요한 안드레에의 〈그리스도의 도시 Christianopolis〉 등에까지 소급된다.

공산주의 개념이 가지는 다양한 용법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분류될 수 있다. 첫째, 19세기 초반 '사회주의' 개념이 등장할 때까지 공산주의는 고대 이래 맥을 이어온 재산공유제 원칙을 가리켰으며 이는 곧 사유재산제도의 비판을 의미했다. 둘째,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공산주의란 인류 역사 최후의 단계인데, 민중들은 계급이 소멸하고 생산력이 극도로 확대된 이상사회에서 의욕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할 수 있게 된다. 셋째, 20세기에 새로이 첨가된 의미 내용으로 수정주의적 마르크스주의 내지 페이비언 사회주의에 대하여 특히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또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공산주의라고 한다. 넷째, 마르크스 이전의 프루동주의처럼 혁명적 성격이 미미한 것을 사회주의라 하고 블랑키주의 등 정치적·혁명적 성향이 짙은 사상을 공산주의로 부르기도 한다.

공산주의 이론

현대의 공산주의는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의하여 체계화되고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요시프 스탈린등이 계승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론'을 가리키지만 처음부터 유물론(唯物論)이나 무신론(無神論)의 토양에서 발아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인류사의 곳곳에서 나타나는 공산주의적 공동체는 성서의 영감을 받아 이루어진 예가 많았고 다분히 종교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현대 공산주의는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의 여파가 정치·사회를 통하여 격심한 파동을 일으키고 있던 변혁기의 산물이었다. 프랑스 혁명은 봉건적 전제군주제를 무너뜨리고 시민적 자유와 권리를 천명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천명된 자유를 제도화하지는 못했으며 결국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제정(帝政)을 초래함으로써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으로 남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을 배태시킨 사회사상 속에는 계몽주의와 더불어 법 앞에서의 평등뿐 아니라 경제·사회적 평등을 부르짖는 혁명적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적 제반 경향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정치상의 모순이나 산업혁명 이후 노정된 여러 사회악의 원인이 궁극적인 진리와 자연법칙에 반하는 사회제도에 있다고 보고 이상사회가 도래하려면 인간의 도의심(道義心)에 각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전적 공산주의의 신앙적 영적(靈的) 색채는 여기서 이성적·인류애적 이상주의로 대체되었으며, 가브리엘 보노 드 마블리, 프랑수아 노엘 바뵈프, 오귀스트 블랑키 등의 공산주의자와 생 시몽, 푸리에, 로버트 오언등 이른바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모두 프랑스 혁명의 평등사상에 힘입은 사람들이었다.

1848년 2월혁명 직후

1848년 2월혁명 직후 마르크스엥겔스가 발표한 〈공산당 선언 Manifest der Kommunistischen Partei〉으로 공산주의는 새로운 차원을 맞이하게 된다. 마르크스주의는 19세기 중반 서유럽에 만연된 인간소외현상(人間疏外現象)을 극복하여 인간의 해방을 성취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했으므로 크게는 사회주의와 같은 범주에 드는 것이었다. G.W.F.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辨證法)과 L .A. 포이어바흐의 인간학적 유물론을 비판 수용하는 과정에서 공산주의 이론을 발전시킨 마르크스는, 1845년 엥겔스와 〈신성가족(神性家族) Die heilige Familie〉을 공동집필한 이래 죽을 때까지 친분관계를 유지했고, 엥겔스는 유물변증법과 프롤레타리아의 세계사적 사명에 이르는 공산주의 이론 전반에 대하여 과학성과 체계성을 부여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인식론(認識論)에 있어서 일체의 선험적(先驗的) 관념을 거부하고 감각과 경험에 의존했다. 이와 같은 유물론적 인식에 따르면 인간이란 온전히 자연의 일부이며 행위는 외부의 자극에 반응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행위에는 물론 정신의 작용이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1차적으로 정신을 좌우하는 것은 감각을 통한 외계(外界)의 인식이며 이러한 인식의 축적으로부터 더욱 복잡하고 추상적인 언표(言表)나 개념들이 형성된다. 유물론의 시각으로 사회구성체를 조명할 때, 그 하부구조(下部構造)를 이루는 것은 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경제적인 요인이고 정치제도·법률·종교·사상·문화 등은 경제적 토대 위에서 상부구조를 구축한다. 인간·사회공동체·자연의 변화와 운동은 변증법 원리에 따라 이행된다. 정(正 These)·반(反 Antithese)·합(合 Synthese)의 변증법 도식은 혼돈과 투쟁의 기제인 동시에 발전의 기제이기도 한데 예컨대 '정'의 내면에는 '반'을 싹트게 할 모순의 씨가 들어 있다. 어떤 사회의 생산력은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능, 과학 기술의 진보에 따라 증가한다. 그때 새로운 생산력과 낡은 생산관계 사이에는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이 일어나며 이 모순은 계급관계로 전이된다. 다시 말해서 낡은 생산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이득을 보는 유산계급(지배계급, 자본가계급)과 새로운 생산관계의 정립을 통하여 이득을 보게 될 무산계급(피지배계급,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는 투쟁이 불가피하다. 새로운 생산관계는 정치제도를 비롯한 상부구조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인류역사를 원시 공산주의 사회,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 봉건사회,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설명한 뒤,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공산주의 사회의 도래를 예언했다. 계급투쟁은 자본주의가 무르익어감에 따라 중대한 국면으로 접어든다. 자본주의는 세계 전역의 경제체제를 서로 의존하게 만들어 노동자들의 공동이해를 깨닫게 하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결속시키는 결과를 낳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환상을 제거하여 노동자계급으로 하여금 자본가들에게 억압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한편 자본가계급은 치열한 경쟁과 시장의 고갈로 인하여 점차 약화되어 간다.
마르크스는 이 무렵까지만 해도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모순과 붕괴 원인에 관하여 충분한 이론적 근거를 갖추지는 못했는데, 1867년에 제1권의 출간을 본 〈자본론 Das Kapital〉은 이러한 의미에서 쓰여진 비판 경제학 이론서였다.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등 고전경제학의 여러 분야를 검토한 마르크스는 노동가치설에 기초하여 '잉여가치이론'(剩餘價値理論)을 도출해냈다.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는 자기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게 되고 이 지불받지 못하는 잉여노동시간에 창출된 가치, 곧 잉여가치는 자본가의 수중에 들어가 이윤(利潤)을 형성한다. 이윤은 곧 노동력 착취의 결과이다. 그런데 자본가들이 자유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를 강화해야만 하기 때문에 여기서 부르주아지(자본가계급)와 프롤레타리아트는 이해의 근원적인 대립으로 말미암아 투쟁이 불가피해진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사회주의가 역사적 유물론과 잉여가치이론으로 인하여 하나의 과학으로 정초되었다고 평가했으며,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적 사회주의'로 명명한 반면 생 시몽, 푸리에, 오언 등 선대의 사회주의에는 '공상적 사회주의'라는 딱지를 붙였다.

1848년 2월혁명이 실패로 끝나고 노동자계급이 마르크스가 예견한 역사발전 과정에 충심으로 참여하기를 망설이자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재검토하게 되었다. 마르크스는 〈고타 강령 비판 Kritik des Gothaer Programms〉(1875)에서 혁명이 이상사회를 당장 가져다주지는 않는다고 전제한 뒤,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공산사회가 잉태되려면 기나긴 진통이 수반되며 그 과도기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마르크스는 이 과도기를 공산사회의 제1단계라고 말했지만 다른 저서에서는 대개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구사하고 사회주의가 무르익어 사유재산과 계급 및 국가가 완전히 소멸된 보다 높은 단계에 도달한 경우에만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사회주의의 제2단계, 즉 보다 높은 단계는 고도의 생산력을 기반으로 한다. 여기서는 분업체계에 노예처럼 예속되는 상태가 불식되며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차이가 없어지고 노동이 단지 생활의 방편이 아니라 생활의 제1욕구로 되어 개인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게 된다.

'공산주의'라는 어휘의 사용법은 일찍부터 혼선을 빚기 시작했다. 1847년 '공산주의자 동맹'을 직접 창설한 바 있는 카를 마르크스는 기존의 정당들이 사회주의라는 명칭을 붙일 자격도 없으면서 그렇게 자처하고 있기 때문에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채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후 공산주의는 그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라 특정한 강령을 가진 특정 정당을 지칭하게 된다. 공산주의 정당을 통합하고 공산당의 강령을 세우는 데 크게 이바지한 인물은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자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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