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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서울 갔다 올께!"

올 여름,
한국 장학재단을 통해 '멘토넷'이라는 프로그램에 지원했었다.
1000여명의 대학생이 100여분의 사회인을 멘토로 모시고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나의 멘토는 지멘스신화(주) 대표의 김영경님이시다.
그 분과의 두 번째 멘토링이 있어서 서울에 올라간다.


1.
"멘토님이 소개해주는 또 다른 멘토"

우리의 첫 번째 멘토링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김영경 멘토는 우리에게 새로운 분을 소개해주셨다.
이번 멘토링의 주제는 "벤처창업 CEO에게 직접 듣는 벤처경영"라고 하셨다.

우리가 모여야 할 곳은 서울 구로동 코오롱빌란트2차 601호.
전주에서 오후3시에 출발해 서울에 도착하여 지하철을 타고 구로동디지털단지에 도착한 시각 오후 6시 20분
약속 시간이 오후 6시 30분에 맞춰 도착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구.디.단역 2번출구에서 멘티 친구 3명을 만났다.
다들 초행길이라 모여서 같이 가게 되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우리는 쉽사리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급기야 코오롱빌라트 1차를 찾아놓고 좋아했다. ㅋ
친절하신 경비원 아저씨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찾아서 목적지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 40분.

약속 시간에 늦어 버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멘토들을 만났다.


2.
"큐브피아의 대표 권석철"

지금의 큐브피아(www.cuvepia.com)의 대표이신 권석철 대표는 사실 '하우리'라는 이름으로 더욱 알려져 있다.
하우리는 '하늘 아래 우리'라는 뜻의 이름으로 모인 컴퓨터 보안회사인데,
권대표는 1998년 처음 회사를 설립한 이래 수 많은 기회(!)를 통해 오늘 날 컴퓨터 보안에 큰 기여를 하셨다.

그런 분을 만나러 가는 건줄도 모르고 나는 코오롱빌란트2차 601호는 '가정집인가?'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회사 회의장에 도착하여 김영경 멘토권석철 대표님에게 '늦어서 죄송함'을 표하고 자리에 앉았다.

우린 우선 저녁식사를 먼저 하기로 하였다.
수영 때문에 점심도 조금 먹고 서울에 올라온 나에게는 희소식(!)이었다.
건물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는데, 반찬이 정말 많고 맛있는 것들 뿐이었다.

식사중에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선 멘토님께서 우리들의 근황을 여쭈어 보시어 한 사람씩 돌아 가면서 새로운 소식도 전하고,
멘토님도 외국에 다녀오셨다는 근황도 전해주셨다.
그리고 멘토님께서 초환이네 학교(경기대)에 재단 문제가 있느냐고 물으셔서 잠시 이야기는 또 대학교에 관한 주제로 흘렀다.
권석철 대표가 지금 회사에는 해킹대회를 위해서 직원들이 촉각을 다투며 컴퓨팅을 하고 있다는 말도 하셨다.
저녁 식사 중 이야기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권석철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러 회의장으로 돌아왔다.


3.
"컴퓨터 바이러스에 '꽂힌'남자"

'89년도 재수'
'인하공업전문대 전산과 입학'

이라는 타이틀을 안고 있는 권석철 사장(이하 '권멘토')은 자기 자신을 "대학와서 물 만난 물고기"라고 표현했다.

권멘토는 어려서 소위 '기억에 없는 아이'였단다. 존재감이 없었다랄까? 아마 그건 딱히 공부를 잘하지도 그렇다고 운동을 잘하지도, 더 나아가서 싸움을 잘하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아이였다는 말이었을것 같다.
그렇게 어린시절을 보내고 재수하여 대학에 들어간 그는 자신이 좋아 하는 것을 찾았다.

'개그'

이게 바로 그의 대학 생활의 시작이었다.
사람들과 사귀어 보니 자신이 결코 기억에 없는 아이가 아닌 그냥 덜 핀 꽃이었음을 알게 된 권멘토는
결국 자신의 끼를 무대에서 발휘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그렇게 개그맨 시험에 지망했고,,,





지금의 컴퓨터 보안회사의 대표가 되었다
(!)

다소 훈훈한 결말의 이 이야기는 후에 회사를 경영하는데 있어 중요한 권멘토의 가치가 되었다고 한다.
(뭐, 그렇다고 벤처를 개그로 본다는게 아니니 오해를 갖진 않아야....)

'바이러스에는 언제 꽂히는 거야?'

개그맨의 꿈이 접혔을 어느 대학시절, 그는 처음 바이러스를 접하고 그 묘한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바이러스가 걸린 디스켓을 돈 주고 살 만큼 바이러스에 대학 집착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바이러스를 분석하며 자신만의 자료로 만들어 나갔다.
(이즈음 지금의 안철수 카이스트석좌교수 와의 만남...그리고 사업 파트너가 됬을 수도 있었다는 후문이...)

이렇게 바이러스 속에서 뒹글며 지내는 그에게 '바이러스 동아리 회장'이라는 이력과 '한국 전산원 취직'이라는 경력까지
더해져 갔고, 그에게 컴퓨터 바이러스는 '필요악'같은 역활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바이러스에 꽂혀 살던 그 남자에게도 벤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오마이뉴스에 권석철 대표의 인터뷰가 있으니 읽어보면 권대표를 아는데 더 도움이 될 듯 싶다.
(클릭)


4.
"하늘 아래 우리, 하우리"

비로서 본격적으로 권멘토의 벤처에 대한 이야기를 들 을 수 있었다.

바이러스 동호회를 이끌어 가던 시절.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과 인맥을 형성했다.
하지만 그 때 가지만 해도 국내 컴퓨터보안회사에 대한 시장은 사람들에게 흔한 이미지가 아니었다.
해외 시장에서 일본 보안회사가 미국에 팔려가고 대한민국내 보안회사에도 무언가 개혁의 바람이 필요 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어느날, 그는 동호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우리 회사 하나 만들래?"

권멘토 이 말에 사람들도 반응이 괜찮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을 뱉은 본인은 벤처창업에 흥분돼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둔대 반해 다른 사람들은 후에

'그 말 진심이었어요?'라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럴 때 발휘하는게 리더십 아닌가?

몇 개월동안 초기 하우리의 창업멤버가 될 4인의 멤버를 설득하여 끝내 회사를 만들게 되었다.
멀리 부산에서 까지 올라온 멤버도 있었다. 하지만 열정과 투지로 그 들이 모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회사. 하우리.

하지만 창업의 고통이 시작되었다.


6.
"컴퓨터 백신은 무료(?!)"


초기 회사는 목표가 없었다.
무엇을 만들어 팔아야 할 지 몰랐다는 말이다.

그때 까지의 컴퓨터 보안 시장의 제품들은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감염되면 그 여부만을 PC사용자에게 알려줄 뿐이었다.
한마디로 의사가 '당신은 죽을 병에 걸렸습니다.' 라고만 말해주는 실정이었던 것이다.
환자의 '그럼 전 어떻게 되나요?'라는 발악에도,
'다시 태어나셔야 합니다.' ('You need to be formatted')라고 밖에 할 수 없던 현실.

권멘토는 새로운 시장의 틈새를 발견했다.


'컴퓨터 바이러스가 걸린 PC에 데이터복구까지 해주는 토탈 서비스'

컴퓨터를 포멧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작 컴퓨터를 사용해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데이터만큼 중요한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우리의 제품은 거기에서 승부를 걸었다.

'사람들에게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알려주고 감염 데이터를 복구해주자!'


회사 창립 1년여동안 개발하여 드디어 제품이 나왔다.
하지만 회사 규모가 그리 크지도 않고 자본금도 많지 않아 마켓팅에 당연히 큰 힘을 쏟지 않아서 그랬을까.
매출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 이거 문제가 되겠는데?"
컴퓨터 바이러스를 연구하던 권멘토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후에 C.I.H로 알려질 바이러스였던 것이다.
권멘토는 이 바이러스에 대한 자료를 각 방송사와 사람들에게 알리려 하였다.
그게 적어도 보안회사를 꾸려 가는 한 사람으로서의 사명감 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발견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그를 불렀던 한 언론에서나 단지 뉴스에 한 줄로
'컴퓨터 바이러스 주의, 날짜를 바꾸거나 컴퓨터를 켜지 않는게 좋습니다.'로 끝나버렸다.

1999년 4월 26일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세상은 여전히 존재했다.
'아 괜안짓을 해버렸나.'라는 생각으로 혼이 빠져 나갈 것 같던 15분...

갑자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은 대학원생인데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가 컴퓨터가 먹통이 되었다는 사람.
그리고 또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설계 도면 작업이 다 날라갔다는 사람.
그 이후로 수 십통의 전화가 걸려와서 컴퓨터 먹통에 대한 문의가 끊이질 않았다.
'결국 이렇게 되어버린 건가...'

권멘토는 곧 바로 회사 직원들을 소집했고, CIH 복구 대책에 들어갔다.
복구 비용은 PC당 45만원.
당시 사람들은 그 터무니 없다고 생각되는 가격에 주춤하고 했다.
하지만 권멘토의 생각은 이랬다.
'지금 가지고 계신 컴퓨터 안의 자료가 45만원의 가치가 없으시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냥 포멧하여 쓰십시오.'

이 바이러스 사건의 계기로 회사는 큰 수익을 거두었다. 회사 설립 1년만의 일이었다.
그 후로 방송에 나가게된 권멘토는 사태에 대한 중요성을 말하곤 했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누군가의 눈에는 그의 행적이 수상하게 비춰졌다.

'보안회사에서 바이러스를 유포한것이다(!)'

한 언론사에 올라온 사설에서 이번 사태의 중심에 보안회사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았다.
분명 그럴 수도 있다.
컴퓨터 바이러스 보안 시장 자체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시장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슷한 사례로 카센터 직원들이 야심한 밤에 길가에 못을 뿌리고 다닌다는 말은 들어본적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비난 하기 시작했다.

후에 CIH바이러스의 진범이 잡히면서 언론은 다시 권멘토를 도닥여주는 듯 하였다.

이후 님다 바이러스, 1.25 대란등이 있을 때 마다 권멘토는 바이러스 백신을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후일담이 있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컴퓨터 보안업계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 것이다.

'왜 컴퓨터 바이러스를 무료로 치료해주기 시작한 걸까.' 라고 말이다.

어찌되었든 컴퓨터 바이러스로 부터 사용자들을 보호해주는 보안 업계를 창업한 멘토의 이야기는 너무 큰 공부였다.



7.
"벤처란....?"


창업은 고통의 시작이라고 말했던 권 멘토.
세 시간에 가까운 멘토링 시간에 그 이유들을 많이 들려 주셨다.

사업자등록.
사회의 부조리와의 대립.
현 시대의 CEO 자질론.
개발만으로 살아 남으 수 없는 시장 구조.
인간 관계.
기술 보증.

등과 같이 사업을 하면서는 많은 시련과 기회에 부딫치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마지막 으로 권멘토가 우리에게 했던 질문이 있었다.

"여러분들은 벤처의 끝은 언제라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우리의 두 번째 멘토링은 끝났다.

8.

"위하여!"

늦은 시각까지 학생들에게 시간을 할애에 주시고 또 같이 한 잔 하러 가주시는 우리의 멘토님들!

대단히 감사합니다!

초환이와 부멘토님들!

김영경 멘토와 권석철 멘토.

22세기! 와 비(?!)



22.

벤처
= 나의 생각을 남에게 전파 하는 것.
= 내가 좋은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들의 얼굴에 웃음을 일으키는 것.
= 좋은 기업을 만들어 파는 일.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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